정부로부터 강제로 낙태·단종(불임) 수술을 받았던 한센인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1인당 3000만~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삭감한 2심 판결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 3건, 서울중앙지법에 1건 등 현재 법원에 계류된 총 4건의 사건 당사자인 한센인 323명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30일 강모씨 등 한센인 20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다267920)에서 "국가는 한센인 1인당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위자료 액수를 다시 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돼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한다"며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액수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단종과 낙태 등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2000만원으로 산정한 원심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한다는 손해배상 제도의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강씨 등은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 수용을 위해 운영해 온 국립소록도병원, 익산병원(소생원) 등에 1950~1970년대에 입원했다. 강씨 등은 모두 이들 병원에서 강제로 낙태나 단종 수술을 받았다.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고, 위원회는 이들을 법에서 정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에 강씨 등은 2011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단종 피해자들에게는 3000만원씩, 낙태 피해자들에게는 4000만원씩을 국가가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남성과 여성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에 경중의 차이가 없고,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사정은 위자료 액수 산정에 참작할 수 없다"며 위자료 액수를 남녀 모두 1인당 2000만원으로 감액했다.
이에 강씨 등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위자료 액수를 삭감한 것은 사법부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며 상고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강제 낙태·단종 수술 피해를 입은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한센인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4다230535)에서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000만원,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