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내 계열사 간 지원, 배임 단정은 잘못
이낙영 SPP그룹 회장 사건 파기환송
그룹내 계열사간 지원행위가 오너가(家) 등 특정인이나 특정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룹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배임으로 볼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배임죄 성립 요건의 구체적 기준까지 제시해 주목된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낙영(56) SPP그룹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파기하고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15도12633).
재판부는 "기업집단 내 계열회사 사이의 지원행위가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인지는 신중하게 판단돼야 한다"며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 사이의 지원행위가 △그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특정회사 또는 특정인의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지원 계열회사의 선정 및 지원 규모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됐으며 △구체적인 지원행위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행되고 △지원행위로 인한 부담이나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객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임이 인정되는 등 문제된 계열회사 사이의 지원행위가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SPP조선이 SPP그룹 계열회사들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철강재 등 원자재를 통합구매해 어음 결제 방식으로 계열회사들에게 공급한 것은 그 지원행위의 성격에 비추어 특정인 또는 특정회사의 사익을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그 자체로 동종·유사 영업에 종사하는 SPP그룹 내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면서 "이 회장이 SPP조선으로 하여금 통합구매 방식으로 SPP그룹의 계열회사들에 대한 지원을 한 것은 SPP그룹 내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SPP조선에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하에 한 의도적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SPP그룹 이 회장과 전무 고모씨 등은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계열사인 SPP머신텍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으려고 또 다른 계열사인 SPP조선 소유 자금 261억원을 임의로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회장은 SPP조선 소유의 고철 1만3000여톤을 무단반출해 횡령하고, 신설 계열사인 SPP율촌에너지의 상품 매출액이 증가하는 것처럼 매출액을 허위 계상하기로 하고 상무보인 전모씨에게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하게 해 공시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또 이사회 결의 없이 SPP조선 자금으로 SPP율촌에너지로부터 1270억원 상당의 자재를 구매해주고 대손처리해 SPP조선에 손해를 입힌 혐의 등도 받았다.
1심은 "이 회장은 회사의 법적 지위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대주주로서 회사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들의 이익에 맞게 합리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책임이 있다"며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도 이 회장의 혐의를 인정해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업이 사업확장을 하면서 단일한 법인격을 유지하며 신설 사업부문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모기업이 100% 지분을 가지는 자회사를 설립해 신설 사업을 맡도록 할 것인지는 기업활동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이라며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기업집단을 구성해 사업영역을 다양화하고 있는 현실을 법리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기업집단 내 계열회사 사이의 지원행위가 배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이 기업의 적법하고 건전한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한편 배임죄 적용에 관한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